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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박5일 2020.8.5~9]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거야,너 살리려고"

2020-08-24

"나는 누구인가?" 수녀님께 피정 동반을 받은 첫째 날에 떠오른 질문이다.

일상을 지내면서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 직장에서의 나, 가족 안에서의 나, 수많은 내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나'인 것일까? 무언가 잃어 버리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솔직하게 물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사랑하신다는 것은 알죠. 그런데 하나님의 모상이며 닮은 나,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알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원해요." 나의 질문은 다소 냉소적이었다. 하지만 내 마음 안에 하느님에 대한 열망은 뜨겁다는 것이 느껴졌다.

 

기도 중에 내 눈 앞에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사랑스러운, 거룩한 등등을 생각하던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모른 척 외면해  버렸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이걸 외면하지 않아야 함을, 이것을 만나야 함을 , 그리고 만날 것을 느끼고 있었다.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아 애써 피하려고 하였다.

 

8월 7일 금요일 성체흠숭기도 시간에 하나님과의 일치를 원하며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그때, 그 일그러진 얼굴이 다시 내게로 다가왔다. 그리고 저 멀리서 주님의 십자가가 보였다. "아, 하나님과 일치하기 위한 여정에서 꼭 만나야 하는 나의 상함(손상됨)이구나." 

그 일그러진 얼굴과 함께 십자가 밑에 서 있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의 피와 물과 땀이 떨어지고 있었다. 불편하다. 겁난다. 죄책감도 느껴진다. 속으로 묻는다. "왜 이런 못난 모습에 주님의 피를 쏟으시나요? 무엇 때문에?"   라는 질문만 맴돌았다. 이런 내 마음을 꿰뚫고 보신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거야. 너 살리려고."  그 소리는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내면에우러나오는 소리였다. "사랑하기 때문이다"고, "다른 이유는 없다"고. 


함께 고통받음으로써 회복을 주시는 사랑.

30년 동안 듣고 말하고 머리로 알고 이해했던 사랑이 뜨겁게 가슴으로 내려온 것이 느껴지는 순간, 감사함과 감격함에 쉴새없이 눈물이 났다.  이후, 나는 내 모습 그대로 주님 앞에 설 수 있었다. 진실을 외면하지 않고, 나의 약함을 포옹해 나갔다. 나머지 여정은 나의 내부를 향해 가며 나의 어둠과 빛을 차례차례 만나갔다.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하니 두렵지 않았다.

나는 약함과 강함을 동시에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고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자 임을 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딸'. 나의 존재가 진실되게 다가온다, 그 믿음을 가지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   (이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