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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2020. 9. 30 – 10. 31]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2020-12-31

 

피정 중반을 지나 긴 침묵 속에서 기다리다가 지친 나는 제대로 가르쳐주지도 않을 거면 

왜 피정으로 초대했느냐고 원망을 하다가 또 다시 주님 생명이 뭐예요라고 여쭸더니 

 

마음 깊은 곳에서 나다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순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붙들고 있었던 그 많은 일들이 나를 살리는 생명줄 인줄 알았는데 썩은 동아줄이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었다.

기도시간에도, 밥을 먹다 가도, 산책을 하는 도중에도 잠을 자다 가도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서 완전히 진이 다 빠진 상태가 되었다.  


이제는 썩은 동아줄을 끊어내고 나를 참으로 살리게 하는 생명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다라는 그 한마디에 

생명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과 

탕자의 비유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돌아가겠다고 결심한 작은 아들의 마음을 이제야 알아들을 수 있었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었다.

 

몸을 추스려서 성체 흠숭기도에 들어가서 기도하는 도중에 갑자기 내 몸 한가운데가 통 빈 상태로 느껴졌다

손으로 만지면 살도 뼈도 만져지는데 기도 안에서는 텅 빈 상태이고 그 안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감탄할 정도였다

그 마음 안에 현존하고 계신 주님의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어서 너무나 포근하고 충만하고 따뜻한 현존의 기운이 나를 감싸자 몸이 팽창되고 붕 뜨는 느낌을 받았다

너무나 행복한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현존체험을 할 만큼 깊은 기도를 해보지 못한 탓이라 

머리로는 하느님이 내 안에 현존하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마음으로는 느껴지지가 않아서 하느님이 계시다는 믿음르로만 열심히 살아왔던 것이다.

이런 시간을 허락하신 하느님

그리고 기도를 배울 수 있도록 문을 열어 주신 수도회

또한 마음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는 수도회 측에 너무 많은 감사를 드리면서 피정을 마친다. (이숙희수녀)